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는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소설 『The Borrowers』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은 같은 뼈대를 공유하면서도 배경, 인물, 메시지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중심으로, 지브리가 어떻게 원작을 재해석해 오늘날의 명작으로 완성했는지를 살펴봅니다.
1. 원작 소설 속 보로워즈 세계관
메리 노튼의 『The Borrowers』는 1952년에 출간된 영국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작고 신비로운 인간형 생명체인 ‘보로워즈’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로워즈는 인간에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들로, 인간 집 안 곳곳에 숨어 살며 인간이 무심코 놓아둔 물건을 빌려 사용합니다. 이들의 삶은 인간에게 의존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완전히 독립적인 세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현실 속에서 절대 눈에 띄지 않을 듯한 ‘마루 밑 세계’를 생생히 묘사합니다. 바늘은 검이 되고, 단추는 식탁 접시로, 실 한 올은 튼튼한 밧줄이 됩니다. 독자들은 이 창의적인 설정 덕분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환상적인 세계가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세계관 뒤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인간에게 발각되는 순간, 보로워즈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자신의 세계가 들키지 않도록 철저히 은폐하며 살아갑니다.
원작의 중심 서사는 바로 이 ‘생존과 은폐’입니다. 인간과의 만남은 늘 위험과 직결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보로워즈의 모습은 독자에게 묘한 긴장과 매혹을 동시에 줍니다.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는 ‘내가 사는 집 어딘가에 작은 사람들이 진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적 설렘을 선사합니다.
이렇듯 『The Borrowers』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거대한 인간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구조와 권력관계에 대한 은유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2.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해석과 차별성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루 밑 아리에티』(2010)는 원작의 설정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적 감수성과 현대적 메시지를 더해 새롭게 재탄생했습니다. 감독 야네바야시 히로마사는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섬세한 작화와 따뜻한 감성으로, 원작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에게 희망과 감동을 전하는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우선 배경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원작은 1950년대 영국의 오래된 저택이 주 무대였지만, 애니메이션은 일본 교외의 정원과 집을 배경으로 설정합니다. 울창한 나무와 빛나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곤충 소리는 관객을 마치 작은 존재의 시선으로 끌어들이며,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주인공 아리에티의 성격 묘사 역시 달라졌습니다. 원작에서 아리에티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갈등하는 소녀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훨씬 더 주체적이고 용감한 소녀로 그려지며, 자신의 의지로 인간 소년 쇼와의 교감을 선택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상을 반영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추가된 인물인 ‘쇼’의 존재는 작품의 정서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쇼는 심장병을 앓고 있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소년이지만, 아리에티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는 원작에는 없는 설정으로, 지브리가 의도적으로 넣은 감동적인 서사 장치입니다.
또한 애니메이션은 원작보다 더 따뜻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작은 존재들이 비록 인간 세계에서 위협을 받지만, 그들의 존엄과 용기는 여전히 빛나며, 서로 다른 존재가 이해와 존중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3. 원작과 애니메이션의 주요 차이와 의미
원작과 애니메이션은 같은 뼈대를 공유하지만, 세부적인 설정과 결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1) 배경의 차이
원작은 영국의 전통적인 저택과 사회적 분위기를 충실히 반영했지만, 애니메이션은 일본 교외를 배경으로 삼아 더 서정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감각을 살렸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장소의 차이를 넘어, 작품이 주는 정서적 울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주제 의식의 차이
원작은 생존과 은폐의 긴장에 집중하며, 인간 세계와의 경계 속에서 작은 존재들이 살아남는 법을 보여줍니다. 반면 애니메이션은 인간과의 공존 가능성을 탐구하며, 희망과 존엄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3) 인물 해석의 차이
아리에티는 원작에서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소녀였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더 주체적이고 용감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소년 캐릭터 또한 원작에서는 이름 없는 주변 인물이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쇼라는 중요한 주인공으로 등장해 아리에티와의 교감을 통해 감동적인 성장을 보여줍니다.
(4) 결말의 차이
원작에서는 보로워즈 가족이 결국 인간에게 발각되어 떠나야 하는 다소 쓸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는 작은 존재들의 불안정한 삶을 현실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리에티와 가족이 떠나지만, 쇼와의 이별 속에서도 서로에게 희망을 남기며 따뜻한 여운을 줍니다.
마루 밑 아리에트는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 모두 작은 존재의 존엄과 인간과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공통의 주제를 지닙니다. 원작은 긴장감과 현실성을 통해 독자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기고, 애니메이션은 희망과 교감이라는 따뜻한 가치를 더해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도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가?”
이 질문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하며, 『마루 밑 아리에티』가 지금 다시 보아도 가치 있는 명작인 이유입니다.